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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속에서 ~~!! ]/山 行 後 記

충절의 고장 영월 - 청령포를 가다

 

충절의 고장 영월 - 오후 4시 보슬비는 포구를 적시고 강물의 크기를 잰다.

4대강 사업으로 주변은 파헤쳐 있고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돌아서니 비탈진 곳에 쥐오줌풀 하나 반긴다.

 

 

청령포(淸泠浦)는 조선 단종의 유배지이다.

강건너가 청령포이다. 예전에는 나룻배에 사람이 밧줄로 당겨서 실어 날랐는데 이젠 제법 근사한 배이다.

단종대왕께서는 서울 광나루에서 뱃길로 7일을 거쳐 이곳으로 유배되었다. 지금은 차로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단종이 기거헀던 처소인데 그 시절에도 기와집이었을까? 12살의  어린조카를 이곳까지 유배보낸 수양대군(세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그 주변 인물들의 소행이리라 믿고 싶다.

 

단종임금의 시종들이 기거 했던 처소이다

 

단종은 이 방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의 생각으로는 만약에 말이지 ...세종의 첫째 문종임금이 왕위를 계승해서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세종사후 2년재임)

 단종이 장성했을거고 그땐 세조도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것이고 ...

 

또 만약에 단종의 복위를 노리던 사육신의 행적을 간신 김질이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단종임금은 암살 당하지 않고 후일에 복권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 세상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니 ...세상안에 지금도 갇혀 있는 듯 합니다.

 

수양대군은 동생 안평대군도 척살 했으니 권력이 무엇인지...모두것이 뒤안켠이다.

단종 죽은지 200년후에야 숙종임금이 단종대왕과 왕후를 복위 시켰다고 합니다.

 

복위되어 단종비가 세워진 비각..여전히 그는 갇혀 세상을 보는 듯 합니다.

지난 영욕의 세월을 잊으려는 듯 노송은 말이 없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침을 뱉으니 수양대군 세조의 아들이 죽고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다는 ..선생님이 가르치던 기억이

세조는 분해서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쳐 강물에 버렸다는 .....

 

그게 다 보고 배운 탓이 아닐런지...

이방원이도 왕권을 잡자 생모인가? 어떤 왕후의 비석을 파다가 광교에 깔았다죠 백성들이 밟고 지나가라고 .....

 

슬픈역사는 아름다운 꽃도 눈물짓게 하나 봅니다

 

관음송이랍니다 ,.아래 설명판에 자세한 설명이.....

 

노산대입니다. 단종대왕이 강등되어 노산군이 되었고 ,어린 단종은 이곳에서  한양 하늘을 보며 그리워 했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입니다.건너편에 망향탑도 보입니다

 

청령포 뒷쪽으로 육봉이 있는데 굉음소리가 나서 놀랐는데, 터널에서 화물 기차가 지나 가는 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소나무 껍질이 단단하고 매끄럽던지 단종대왕의 손끝도 스쳤을지 몰라서...

 

단종은 정순왕후와 결혼을 하자마자 이곳으로 유배되었으니

이곳에서 단종대왕은  1살 많은 정순왕후를 그리워 하며 돌을 쌓아다는  망향탑입니다.왕후는 후에 스님이 되었으니,,,..

 

단종의 옥체는 이 강물에 버려졋으나 떠 내려가지 않고 빙빙돌아  ,추운 겨울날 하얀 손만이 물위에 떠 있었다고

시녀와 시중들도 이 강물에 몸을 던졌으니....정향나무 한 구루 바람 향기 날리고, 말없는 산그림자 강물에 잠겼도다.

 

"노산군이 스스로 목을 매어서 졸卒하니 예로서 장사를 지냈다"는 세조실록의 기록이 있으나 또 다른 실록들에 의해 진실이 알려지 듯

광주민주항쟁의 기록물도 세계유산기록물에 등재 할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기록은 "둔필승총(둔한 필이 총을 이긴다)"이다

역사를 끌고 가 듯 기차는 소리 없이 산속에 묻힌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단종대왕은 어떠 했을까 ? 생각이 깊어졌는지 막배로 태워 보낸 선장님 내려 오라고 소리쳐

화들짝 놀라 나무 계단을 내려 왔는데 인기척이 없다.헉 "뱃사공 카론"이었나 ?  막배를 타고 청령포를 나왔습니다.

(카론=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혼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