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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속에서 ~~!! ]/野生花 갤러리

수국水菊 이야기 -공산성.미르섬에서

수국水菊  이야기
공산성.미르섬에서
공주유구색동수국축제

6월 부여 출장길에
"공주유구색동축제"라고 프랑카드가 길거리에 있어서
일 끝내고 올라오는 길
빗속에서 카메라들고
폼나게 아무도 없더라
그게 더 좋았쓰으ㅎ

나는 수국하면 
수국 꽃보다는 여인의
이름으로 더 어울리는듯 하다
이슬처럼 영롱하고
분홍빛이 촉촉한 미인이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과 함께 연상된 수국꽃  막연한 나의 생각들이다.

 

ㅡ수국접사

 

 

그러나 수국이란 이름이
꽃보다는 역사의 한켠으로
강렬하게  기억되는것은
하대치(?오래되서가물)의 누이로의 역사다.
벌교에서 자란 하대치의 
누이는 군산 미세포공장으로
취직해서 고향을 떠난다.
논밭이 없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미세포공장은
유리판에 쌀을 흩어지게 해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일본놈들은 김제 평야에서
거둬들인 벼와 쌀을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반출했던것이다.

하대치의 누이 수국은
이쁘고 ,성실해서 공장장의
눈에 띄었는데 그놈의
겁탈로 사단이 일어나고

그 소식을 들은 하대치는
그날밤으로 벌교에서
군산으로 찾아가
공장장을 죽이려 했는데
실패하고 그 후유증으로
공장장은 에꾸가 되어서
더 여공들의 착취가 심했다
하대치는  빨치산의 완장을
차고다니는 무소불위의 청년이었던것으로 기억
이상은 조정래작가님의
태백산맥의 일부 얘기다.
더 슬픈건 
숙국이란 누나는
그 공장장과 결혼을 했던가 ?
아무튼
(아주 오래전  읽었던 기억이니
틀렸어도 이해하시라)
그 이후 수국꽃만 보면
이 얘기가 스치듯 지나간다

그래도 수국은 능소화. 옥잠화.
비비추.베롱나무꽃등과 함께
여름철 반가운꽃으로 카메라를 꺼내게 만든다.

ㅡ빗방울과 꽃수술의 조화

 

ㅡ울 옆지기가 후리지아
담으로 좋아하는 애화愛花다. 그것도 보라색 

 

수국은 이렇다 공주 미르섬에서의 하루
ㅡ비는 여전히 여행자를
붙잡지만 난 시간이 없다
ㅡ비 온다고 내 나이가  우산속에서 가만 있지 않으니

 

ㅡ그래서 시간이되면
문밖으로 아웃도어맨이  되어 가는것이다

 

ㅡ수국의 또다른 얘기는
조정래 작가는 꽃중에서도 ‘수국’을 제일 좋아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반영하여 시대상을 반영한 여성으로 등장을 시켰다고 한다.
ㅡ조정래 대하소설 3부작 (아리랑, 태백산백, 한강) 중 아리랑에도  나오는데 거기 ‘수국’이라는 여인은
ㅡ수국이 누나를 다른 누나들보다 유난히 좋아했던 것은 얼굴이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바로 꽃이름인 누나의 ‘수국‘이라는 이름 탓이기도 했다

 

ㅡ아들 하나를 낳고 딸을 내리 셋을 낳게 되자 할머니는 너무 서운해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ㅡ그런데 마당가에 활짝 핀 수국꽃덩어리가 부처님 얼굴로도 보이고 관세음보살님 얼굴로도 보이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곧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ㅡ사실 여기서 할머니가 본것은
이런 수국 아니라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해서 불두화라고 부른
백당이다.백당도 그냥수국이라 부르지만 헛꽃으로 꽃술이 없다
내 생각이다 ^^

 

ㅡ다음엔 꼭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그래서 주인공이
(사내놈)태어난거다 ㅎ 
ㅡ그래서 누나의 이름도 수국이라고 지었고, 그 덕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위로 누나가 셋이었다나 
ㅡ수국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 모습으로 
보일 때 축원을 올리면 
소원성취가 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으니 내가 찍은 사진이
그리 보인다면 아들 나달라는 시기는 지났으니 건강하라고
비시게들 !! 푸하하

 

ㅡ잔뜩 비를 머금어  힘들어 하는 수국

 

ㅡ 수국을  찍다 보면  소나무와 잘 어울린다

 

ㅡ이렇케ㅎ

 

ㅡ사실 ㅡ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이야기 내용들이 태백산이 아니라 지리산일대 벌교.순천.고흥을 토대로 ...
ㅡ재미난 사투리들이 
ㅡ울집 옆지기는 사투리가 이해를 못하니  읽을 때 진도가 안나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ㅡ벌교 사람들은 요즘말로 왜 그렇게 강성?이었을까

 

ㅡ이유는 간단하다.
벌교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항일투쟁의 역사적인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곡창지대로 들어와
착취도 심했지만 또 한편 신문물이 들어와 일찍 깨우쳐
식민지에 항거하게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 당시 일제에 항거한 젊은이들은 벌교의 주먹들이다

 

ㅡ비는 이제 좀 그친 듯하다
이런길도 좋다

 

ㅡ여름으로 가는길은  수국이 지키고 있다.

수국누나가 보고 싶긴하다.
내 위로 누나가 여럿있지만 가끔
나땜시 누나들이 태어 난거라고
농담삼아 얘기하곤 한다
아들 하나 더 날라고 울모친이 ㅋ

사촌누이가 국희란 이름이 하나 있긴하다 하하

 

올라 오는 길에 공산성에서 

 

 

 

 

이 여름 행복 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