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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속에서 ~~!!]/시가 있는 아침

꽃 - 이육사

 

 

꽃 - 이육사(1904∼1944)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쓴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시인은 또 다른 시 ‘광야’에서 기원의 자리를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라고 노래한다. ‘북쪽’은 안정과 질서를 잃어버린 미망의 장소다.

그 북쪽 툰드라에도 새벽은 어김없이 도래하나니, ‘꽃맹아리’야말로 정신의 여명을 드러내는 최초의 발아(發芽), 곧 영혼의 각성을 재촉하는 심미적 상징이다.

자연의 약속은 어김이 없어, 비록 늦게 오더라도 봄은 오고야 만다. 그런데 올해의 봄은 너무 멀고 더디다.

이 우중충한 꽃샘추위를 결딴내는 화창한 봄 햇살이 천지에 가득했으면….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