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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속에서 ~~!!]/ 나의-詩 하나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 윤재철(1953~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재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 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

죽음은 남몰래 술자리를 뜨는 일과 같다. 술값 서로 내려고 카운터 앞에서 법석 떨지 않고,

소매치기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 가면 다시 못 올 그 길의 아득한 외로움을 시인은 도리어 즐거워한다.

죽음 속에서 삶을 보았다는 듯 환한 얼굴로, 이 연습은 아주 그럴듯해서, 실습 같다.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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