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 윤재철(1953~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재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 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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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남몰래 술자리를 뜨는 일과 같다. 술값 서로 내려고 카운터 앞에서 법석 떨지 않고,
소매치기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 가면 다시 못 올 그 길의 아득한 외로움을 시인은 도리어 즐거워한다.
죽음 속에서 삶을 보았다는 듯 환한 얼굴로, 이 연습은 아주 그럴듯해서, 실습 같다.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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