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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shop·洗心址

때론 미술관도 가는 남자

 

 

때론 미술관도 가는 남자

 

지난 오월 마지막 수요일에 시간을 내어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고

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에서 스케치를 하였다 .

 

별서는 별장과 같은 의미이나 서墅(농막서)자에서 보듯이

 흙토土위에 들야 野를 지고 있으니 참 재미 있는 한자이다.즉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란다.

농사를 지으며 쉴 수 있는 곳 .대원군의 별서  "석파정"

(촌스러운 촉으로 여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란 생각을 했다,

대원군에 대한 역사인식이 별로 안좋은 나는 누굴 걸 빼앗았다는 생각을 줄곧....)

그 생각이 적중했으니

 

 

 

야외 조각 공원에서 가장 멋졌던 작품.

 

존 디바인의 작품. 비너스를 현대적으로 해석함.

 아주 오래전 과천현대미술관에서  마주하고 여기서 보다니  

 

 

석등 사이로 부암동의 고즈넉함이 멋스럽다.

서울도 잠시 짬을 내면 이리 좋은 곳도 많은 것을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한탄할 그 무엇도 없다.

 

 

이제 자연과 함께 사색하고

 

 

늙어 죽는 날까지 같이 걷는 것이다.라고

 

 

참으로 화목한 한 가정의

 

 

 

별서가 아니었을까 ?

 

 

...

 

 

너럭바위

코끼리 형상을 닮아 코끼리바위라고 한다는

그 형상을 찾아 내지 못했으니...

 

 

비가오면 폭포가 생겨

눈물바위라고도 하던가 ?

 

   

수련하나 키웠으며 운치가 더 있었을 걸.. ...

 

 

 

 

잠시 둘러보고

그늘 밑에 자릴 잡았다.

 

 

서울시 보호수라는데 수령이 없네 ?

 

 

 

 

스케치를 끝내고 미술관으로...가는데

그제서야 화우들은 도착한다.

점심 약속이 있었기에 먼저 움직였더니 시간을 벌었다.

 

 

 

 

청운동 길로 내려오다

가압장(물탱크)에 만들어 놓은 윤동주 문학관도 둘러보고

아주 좋은 날이다.

 

돌아와 궁금한 석파정에 대해서

 

 이 별장이 원래 김흥근(1796~1870)의 소유였다는 증거(바위에 새긴 삼계동글자).

김흥근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형인 김홍근도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 안동 김씨 문중의 사람입니다.그

의 5대 조부도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 선생입니다.

김흥근은 이 곳에 별장을 짓고    삼계동정사'' 라고 불렀습니다.
바위에 각자된 삼계동은 그때 새겨진 것 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을    

 앞세워 이 집을 헌납 받은뒤 바위 속에 있는 집이라 하여 별장을 석파정이라고 고처 불렀답니다. 

.

.

그러면 그렇지

(학창시절 우리 역사 선생님은 쇄국정책을 했던 대원군을 소원군이라 부르면서

강의 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석파는 대원군의 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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