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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속에서 ~~!!]/생각만들기-노트

나를 흔드는 시詩 한 줄 - 누가 내게 기미를 하는가 ?

 

나를 흔드는 시詩 한 줄 - 누가 내게 기미를 하는가 ?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내가 기억 할 수 있는 말임에도 아직

어미 젖묻은 아기의 옹알이보다 짧으리라. 

                                      단테의 "신곡"천국편

 

시는 사물에 관한 깊은 공감에서 태어 납니다.

모 일간지에서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근본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연재를

시작한다는데 고운시인님의 시 한줄이다. 

 

좋은 칼럼이구나 생각했는데

출근해 보니 이런 멜이 또 와 있었다.

"20대가 아니면 절대로 쓰지 못할 청렬한 시풍은 젊은이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오래 살수록 부끄러운 인생이 되어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어진다. 
시인에게는 요절의 특권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다. 젊음과 순결을 그대로 동결해버리고 만듯한 청순함은 후세의 독자들마저 끌어들이고도 남으며, 작품을 펼치면 항상 수선화와 같은 고운 향기가 피어오른다.
요절이라고 적었지만 윤동주는 사고나 병으로 떠난 게 아니다. 1945년, 일본 패전의 날이 닥치기 불과 반년 전 만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던 것이다." (15p)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요즘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적인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은 물론,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최근 아베의 참배에 대해 "아베 총리가 실수했다고 생각한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모두 아베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 겁니다. 여전히 반전과 평화헌법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이 예전만 못한 듯해 안타깝습니다.
 
일본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가 쓴 반전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일부를 소개해드립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온 동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이 보이곤 했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갔어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모를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누구 하나 나에게 고운 선물을 주지 않았어
남정네들은 거수경례밖에 할 줄 몰랐고
아름다운 눈빛만 남기고 다들 떠나갔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멍해졌고
내 마음은 얼어붙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어...
 
태평양전쟁에 휩쓸린 15세 소녀의 아픔이 느껴지는 '반전시'입니다.
 
그녀는 50대에 들어 갑자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만난 것이 한국어와 한국시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주었지요. 앞에 소개해드린 것이 그녀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쓴 에세이의 내용입니다. 고등학생용 교과서에도 실렸었다고 하니 일본사회의 분위기가 요즘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지 10년이 된 환갑의 나이에 아사히신문사에서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그리고 팔순을 눈앞에 둔 2006년 2월 혼자 살던 도쿄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며칠 뒤에야 유서와 함께 발견됐다고 합니다.
 
"내 뜻이니 장례와 고별모임 따위는 하지 마세요. 이 집도 당분간 빈 집으로 두레 될 터이므로 조위의 물품이나 조화를 포함하여 그 어떤 것도 보내지 마시길. 그 사람도 죽었어? 하고 일순, 그야말로 잠깐 저를 떠올려주시는 것만 해도 분에 넘친답니다."
 
최근의 일본정부의 역사를 무시하는 위험한 행동들을 보며, 슬프고 아름다운 반전시를 쓰고 윤동주를 좋아했던 한 일본 작가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다시 많아지는 것이 일본이 '정상 사회'가 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