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패권의 흐름을, 임진강에서 정복의 본질을 생각했던 발걸음은 이제 남쪽 땅을 향한다.
패권 추구와 정복 전쟁을 가능하고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쇳덩이 문명을 찾아서다.
‘철의 왕국’으로 불리는 가야 문명이다.
쇠는 인류에게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척박한 황무지를 비옥한 농경지로 바꾸는 획기적인 농기구가 됐지만,
그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자 싸우는 살상 무기로서도 어마어마한 효율성을 발휘한 것이다.
쇠 중에서도 ‘철’은 인류 문명에서 한 획을 긋는 일대 전환점이 된다.
철을 발견하기 거의 5000년 전부터 인류는 청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동의 희소성 탓에 극소수의 지배자들에 의해 극히 제한적인 용도로밖에 사용될 수 없었다.
철은 달랐다.
매장량이 풍부한 데다 지역 편재성도 훨씬 적어 제조법만 알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철과 함께 쇳덩이의 대중화가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철기의 수평적 접근의 용이성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도 크게 증가시켰다.
인류가 돌을 깎아 석기를 만든 이후 철광석을 녹여 철기를 만들기까지 거의 300만 년이 걸렸지만,
철기에서 수소폭탄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3000년이 걸렸을 뿐이다.
여러 소재를 섞은 합금과 세라믹 같은 신소재 역시 철의 발견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철이 없었다면 아마도 등장이 불가능했을,
최소한 한참 뒤처졌을 합금으로 만든 비행기에 몸을 싣고 김해공항에 내렸다.
가야 제국(諸國)의 발자취가 서린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오늘날 조상들의 잊힌 영화 되찾기에 열심이다.
지자체마다 유적지를 재정비하고 박물관을 만들어 발굴된 유물들을 자랑하고 있다.
자기들의 가장 특징적 유물을 상징물로 내세우기도 한다.
후기 가야연맹을 이끌었던 고령은 삼각형 구멍의 원통형 그릇받침을, 안라국의 고장 함안은 불꽃 무늬 토기를,
그리고 다라국의 합천은 봉황문 고리의 칼자루를 크게 만들어 박물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김해는 공항에서 김해 시내로 들어가는 경전철 선로에 대형 금관을 만들어 전철이 통과하게 했다.
승객 여러분, 금관가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금관가야는 원래의 이름이 아니다.
‘가야’라는 이름 자체가 신라 말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중국의 『삼국지』, 일본의 『일본서기』 등 문헌과 광개토대왕비
기록에서 금관가야는 구야국·가야국·가락국·임나국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게 가락국이다. 그러니 금관가야라는 호칭보다는 가락국으로 부르는 게 옳아 보인다
김해 분산성에서 바라본 김해 시가지 전경. 가야의 잊힌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라는 듯
한은 마한과 진한, 예는 동예, 왜는 일본을 가리킨다.
철이 많이 나온 만큼 다양한 철 제품도 만들어졌다.
이처럼 풍부한 철광석과 뛰어난 제련기술에 힘입어 가야는 신라와 맞먹는 국력으로 발전했으며,
그런데 왜 그토록 허무하게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을까.
게다가 결정적으로 4세기 말에 고구려의 남정(南征)으로 가락국이 사실상 멸망함으로써 도약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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