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슬픈 눈 - 한영옥(1950~ )
아침 물리며
아침상 차려준 이도 물리다가
점심 물리며
점심상 차려준 이도 물리다가
저녁거리를 싸들고 온 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탈 듯이 비로소 간절하다
하얗게 지는 해자락에
싸들고 온 슬픈 저녁 끼니
목메는 깻잎
한 장 한 장 일으켜 먹으며
석양을 온 힘으로 받는다
저녁상 거두는
그의 눈동자에 오롯이 고이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서 인용.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아침상 차려주는 이, 점심상 차려주는 이, 해자락에 저녁거리 싸들고 와 저녁상 차려주는 이.
아침상 거두는 이, 점심상 거두는 이, 영혼의 슬픈 눈 자신의 동자에 오롯이 고이게 하며 저녁상 거두는 이.
삼시 세 때, 밥 펴고 거두는, 탈 듯이, 타는 듯이 간절한 이승의 먹는 외로움이여. 남자 여자를 떠나 삼시 세 때,
상 받는 이의 또한 크낙한 외로움이여.
이토록 자명한 존재의 세 때를 더욱 극명하게 쳐들어주는 깻잎 한 장 한 장의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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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시인
바람이 시작하는 곳
- 정현종(1939 ~ )
하루를 공친다
한 여자 때문에.
하루를 공친다
술 때문에.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
정신이라는 과일이 있다.
몸이라는 과일이 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두엄이고 햇빛이고
바람이거니와
바람 없는 날은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대지여
여자는 바람인가
술은 햇빛인가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하늘이다
바람이 시작하는 그곳이여.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하늘인가 들판인가. 마음인가. 이런 질문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고,
그 대답의 궁구로 나날의 잠에 드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르자 하는 그런 약속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약속 몰라도, 그때 A의 거짓말, 그런 따위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를 묻는 것으로 나날의 양식을 삼는 이보다야
시의 나라 신민임을 절로 알 수 있다. 무거운 건 나쁘다고, 바람 없는 날은 대지도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라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 바람의 눈을 그리며 형체 없는 바람을 감각하는 마음.
수년 마음에 맺혀 알아보고 싶은 일, 지지한 이러저러한 의문투성이 일 지우고 ‘바람이 시작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런 오롯한 물음으로 몸 채우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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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시인>
하루에게
- 박주택(1959~ )
너는 어디로 가서 밤이 되었느냐 너는 어디로 가서
들판이 되었느냐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이를 닦으며 귀에 익은 노래를 듣는다
존재를 알리는 그 노래는 추억의 중심으로 나를 데려간다
네가 살아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전화를 받고 차를 마시고 또 무엇인가 두려워 마음을 졸였겠지
네가 가고 난 책상에 먼지가 한 꺼풀 더 쌓이고
건물들은 늙어 어제를 기억하는 데도 지쳤지
네가 풀잎이라면 나를 초원에 데려가는 게 좋겠다
더더욱 네가 그리움의 저편 석양처럼 붉게 타오른다면
나도 모르는 그리움 속으로 데려가 다오
그 속에서 온갖 그리움들을 만나 그리움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며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를
저 나무에게나 물어보리라
하루한테 “너는 어디로 가서 밤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밤이 된 하루는 거기가 어디라고 말해줄 것인가.
시인들은 아무래도 영원히 질문하는 자인가 보다. 자기도 남도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요령부득의 일만 묻고 있으니.
시시각각의 시간의 생멸을 감각하는 자가 아니라면 하루한테 이런 문장을 토설할 수 없을 것.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이를 닦으며”라고 바로 뒤 구절에서 자기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걸 보면,
하루라는 시간에게 말을 시킨 일은 나는 어디서 와서 여기 왜 이렇게 서 있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는 일.
시간이라는 무상한 법칙의 길에 들어선 생명은 ‘추억의 중심, 온갖 그리움 속 그리움’인 자신의 기원을 밤이 오면 더욱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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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시인>
박주가리 홀씨/
다 날려 보내면/
바람이려니/
.
.
삶의 고뇌
음울하고 여위었지만,
살아 있다고,, 견디고 있다고 ,
바람이려니/
그대가 그리운 날엔
.....................................................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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