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초에 꽃의 이름으로 태어나
- 박송이(1981~ )
꽃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은 죄다
발목이 아프다
너에게 가기 위하여
푹푹 아무데나 깊숙이 땅을 밟아본다
너와 떨어져 사는 세상이 경악스러워
달랑 혼자인 내가 달랑 혼자인 널 그리워
외롭게 조는 일
꼭꼭 숨은 네 나이테 속으로
빙글뱅글 꽃이 피어도
매발톱꽃에게 사랑은 한 구절로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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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피어야 했던 매발톱꽃이 가을을 뛰어넘어 이 겨울에 피었다.
하필 햇살 들지 않는 응달에 뿌리 내린 탓에 지난 계절 동안 애면글면 그러모은 햇살이 턱없이 모자랐다.
찬 바람 불면 산산이 무너지는 여린 생명이거늘 그늘 사이로 스며드는 가늣한 온기로 몸을 데우며 먼 길을 걸어왔다.
지친 걸음을 멈추고 그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끝내 내려놓지 않은 그의 가녀린 생명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생명을 향한 혼신의 사랑이다. 한 구절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겨울에 핀 매발톱꽃처럼 끝내 홀로 걸어야 할 생명의 길이다.
시공을 뛰어넘은 한 송이 작은 풀꽃이 보여주는 생명의 노래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