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신현정(1948~2009)
나 이사를 많이 하였다
이제 한 번 더 집을 이사해야 할 일이 남았다며는
달팽이집으로 가려고 한다
달팽이집에 기거하면서
더듬이를 앞장 세워
깃발들 느릿느릿 지나가게 하고
길가에 나무들
느릿느릿 지나가게 하고
초록을 느릿느릿 지나가게 하고
분홍을 느릿느릿 지나가게 하고 하겠다.
....................................................................
이사를 많이 다녀보면 안다. 짐을 푼 모든 집이 사실은 여관이라는 것을.
평소에도 섞이지 않게 서랍장을 정리해두는 습관의 서글픔을. 안채를 쳐다보며 새끼들의 재롱을 구기박지를 때의 그 타는 마음을.
합환의 자리에서도 제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노심초사를. “그냥 e-메일로 하세요.
주소는 무슨….” 그러다 마지못해 직장 주소나 부르고야 마는 소심을. 월세 때는 한 달이 너무 빠르고 전세 때는 두 해가 너무 빠르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살고 싶다. 비록 달팽이집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야 한다고 해도 내 집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느릿느릿 시인은 다시는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이사하셨다.
선생님, 편히 쉬세요.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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