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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shop·洗心址

맺힌것은 풀고 ,풀린 것은 묶고

 

맺힌것은 풀고 ,풀린 것은 묶고

 

머묾이라는 결제와 떠남이라는 해제(解制)는 수행승의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머물 때는 모두가 푸른 산처럼 꿋꿋한 자태로 살았지만 떠날 때는 한결같이 자유로운 흰구름이 될 수 있었다.

 때로는 하늘 높이 우뚝 서기도 했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기도 했다.

그 잠김을 통해 속살이 여물어야 다시 솟아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긴장과 느슨함으로 맺힌 것이 있으면 풀었고, 마냥 풀어진 것이 있으면 다시 야무지게 묶었다.

 물이 흐르기만 한다면 피곤함이 묻어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고여 있기만 한다면 답답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

래서 흐를 곳에서는 흘러야 하고 머물 곳에는 머물러야 하는 것이 물의 순리인 것처럼 인간사 역시 그랬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것도 이동과 머묾의 반복이다. 살다 보면 머무르고 싶다고 늘 머무를 수도 없고, 이동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긴 하다.

 하지만 지나친 머묾은 정체를 의미하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이동은 불안정을 내포한다.

 어쨌거나 농경시절에는 이동하는 성격을 ‘역마살’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불렀지만, 현대 IT시대엔 그것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되었다.

노마드(nomad·떠돌이)가 칭송되고 붙박이는 알게 모르게 ‘도태’라는 뉘앙스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았고, 반대로 늘 떠돌아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동과 머묾이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동은 이동대로, 머묾은 머묾대로 같이 빛나게 된다.

하지만 혜원(523~592) 스님은 30년 동안 그림자조차 여산(廬山) 밖을 나가지 않았고, 마조(709~788) 선사는 개원사(開元寺)에서 30년을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 머묾을 어느 누구도 정체나 도태로 보지 않았다.

 같은 장소지만 그 안에서 해제와 결제를 거듭했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머묾 속에서도 떠남을 반복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훈련시킨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사바세계 전체가 80년 평생을 머물러야 하는 거대한 총림이요 또 수도원이다. 서로 의지하며 또 참지 않고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붙박이건 떠돌이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남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법연(1024~1104) 선사는 이런 소박한 구절을 남겼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 보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글=원철 조계종 불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