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통(桶) - 김종삼(1921~1984)
희미한
풍금(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 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는 물음에
“땅 위에서는 영롱한 날빛을 시켜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준 일밖에 없다”고 대답하는
이 내용 없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빈자리는 실용(實用)을 비워내고 환상을 채워 넣으려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차지하는 여백이므로 투명하기만 하다.
그가 길어온 물(시)로 영혼의 기갈을 축여온 독자에겐 무위(無爲)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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