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속에서 ~~!!]/시가 있는 아침

하루에게 - 박주택(1959~ )

 

 

하루에게 - 박주택(1959~ )

너는 어디로 가서 밤이 되었느냐 너는 어디로 가서
들판이 되었느냐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
이를 닦으며 귀에 익은 노래를 듣는다


존재를 알리는 그 노래는 추억의 중심으로 나를 데려간다
네가 살아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전화를 받고 차를 마시고 또 무엇인가 두려워 마음을 졸였겠지
네가 가고 난 책상에 먼지가 한 꺼풀 더 쌓이고
건물들은 늙어 어제를 기억하는 데도 지쳤지


네가 풀잎이라면 나를 초원에 데려가는 게 좋겠다
더더욱 네가 그리움의 저편 석양처럼 붉게 타오른다면
나도 모르는 그리움 속으로 데려가 다오
그 속에서 온갖 그리움들을 만나 그리움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며 내가 왜 여기 서 있는지를


저 나무에게나 물어보리라
...............................................................................................................................................
하루한테 “너는 어디로 가서 밤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밤이 된 하루는 거기가 어디라고 말해줄 것인가.

시인들은 아무래도 영원히 질문하는 자인가 보다. 자기도 남도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요령부득의 일만 묻고 있으니.

시시각각의 시간의 생멸을 감각하는 자가 아니라면 하루한테 이런 문장을 토설할 수 없을 것.

 “나는 여기에 있다 여기서/이를 닦으며”라고 바로 뒤 구절에서 자기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걸 보면,

하루라는 시간에게 말을 시킨 일은 나는 어디서 와서 여기 왜 이렇게 서 있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는 일.

시간이라는 무상한 법칙의 길에 들어선 생명은 ‘추억의 중심, 온갖 그리움 속 그리움’인 자신의 기원을 밤이 오면 더욱 그리워한다.

<이진명·시인>

'[생각 속에서 ~~!!] >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자꽃 설화  (0) 2011.05.31
흔들림  (0) 2011.04.19
우화의 강 / 마종기  (0) 2011.04.06
바람이 시작하는 곳 / 정현종  (0) 2011.04.04
모엘 - 문정희(1947~ )  (0) 201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