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2014. 3. 21. 18:25

 

저 길 끝에서는

 

 

생 각 1)

 

무의미해졌다.
나이들수록 사는 세상은 허무하다.

모르겠다.

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알베르까뮈가 묻혀 있는 곳이다.
우리는 프로방스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한다.

그 진지한 철학자들의 삶이 궁금하다
철학을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해방되어 있었을까 ?

 

 

어느해 파리 베르사이유궁전을 다녀 오다
그만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간 일이 있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 알아채고 돌아 온 일이 있었지만
시골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바라다 보는 풍경이 가슴에 남았다.

낡아있어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 시골 언덕베기집들
이국異國이라 그리 마음에 들어 왔을까?
그리고 층층하하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는 사이로
그 맑은 바람과 햇빛이 쏟아내는 향연은 잊을 수가 없다.
(운악산에 가면 그런 다랭이 밭에 비가림  포도가 있다.
고운 빛을 받으며 그래서 가끔 가곤한다)

언제 다시오마 했던것이 / 이젠 그 이국의 기차역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숲을 걸어 나가니

 

 

 

바다가 보였다 .다시 되돌아 가기로 한다 .

 

 


생 각  2)

13살의 소녀는 죽어서 어디를 가는지 궁금해서라고
자살 이유를 말한다.
흔히 우리는 사춘기라고 얘기한다.
나도 그 나이에 궁금했다. 난 죽음의 건너편은 어둠이었고 답답했다.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건너방에서 안방으로 건너가 어머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시간이 영원하길 바랬다.

 

 

사람이 사유한 공간은 어디까지 일까?
마르크스는 진보적 사유를 이야기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그러나 나의 사유는 항상 과거로의 회귀다.

역설적으로 현재가 자유로우니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
현재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


둘다 아니다 .

사유하는 존재는 사유하는 공간속에 지배 당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디에 있는가란 명제 속에서 나의 사유는 시작 되어진다.

사는 의미가 무의미한 것은 나이 때문인가 ?
누가 묻는다면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면 어느때인가라고 ?
아마도 13살의 나이라고..그리움이 많은 나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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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을 걸으면서 사내는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