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만공스님 만나러 수덕사에 들다.
경허,만공스님 만나러 수덕사에 들다.
톨날 모임이 있는 날 .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시간을 내어 주지 않는다.
"포용적 도시 북경전 包容的都市北京展"이 28일 개관인데
중국에서 유물이 늦게 도착 디스플레이 하느라 학예사들의 노고가 ...
모임장소는 대천. 오후 6시에 출발 10시도착
뒷날은 일요일 수덕사를 들른다기에 나선 길이었다.
수덕사 / 10여년 전에 안면도 여름 피서지에서 돌아 오는 길에 들렀는데
마침 고은시인님 특강이 있던 날 아이들과 "시詩에 대해서" 도강을 했던 기억
그리고 천수만을 건너면서 강둑에 시원한 바람을 맞았던 기억이 두고두고 찾고 싶은 절이었다.
그리고는 나의 노트에는 항상 올해의 여행 일번지로
마곡사 >> 만월암 >> 수덕사>> 금강하구 철새도래지로 이어지는 코스였는데
매년 미루다 작년 늦가을 마곡사와 금강하구(철새는 날지 않았다 )의 하루 여행이 끝이었다.
그 수덕사를 들르고 싶은 이유는
대중 가요 "수덕사의 여승"의로 알려진 수덕사의 기억보다는 불교의 선승으로 불리는
경허와 만공스님의 "덕숭총림" 본산이 수덕사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경허선사가 입적한지 101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두 선사를 만나 빠져들게 된것은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서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길도 "길이 있지만 길 없는 길을" 걷고 있을것이다 .
나의 화두는 지금도 이것이다.
인생이 그러하기에 ..최인호님도 그 길을 떠난것이 아니겠는가.
만공스님의 열반은
76세의 세수를 마치면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날짜까지 어림짐작하게 되고
시봉들던 비구니스님들을 물리치고 고요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날 목욕재계하고
삭발도 다시금 깨끗이 하고 제자들이 용맹정진하는 요사채와 암자 등에 들러 격려하고
법상을 물려받을 제자에게 잘 지키라 당부하고 그리고 생밤 몇개를 까먹고
당신 자신에게 "참 오래도 함께 살았고 잘 살았으니 이제 우리 이별하세나" 하면서
환한 웃음을 지은 후 침목을 베고 자는 듯 그렇게 열반에 들었단다.
죽음이 이리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몇년전에는 웰빙이 전국을 들썩 , 이번에는 먹는게 아니라
힐링이 대세다.그래서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2년전부터 앞으로 대한민국화두는
"킬링(나 자신을 죽여라)'일거라 얘기 했는데
요즘 간간히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그러더라고 ... 허허
수덕사 일주문이 걸어 나왔다.? 중생을 맞으러 ?
원래 일주문은 이 포교당 사이에 있다.
수덕사의 대웅전은 단청이 되어 있지 않다 .
기억으로는 해남 미황사가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을걸로 가장 오래 된 절로 ?
헌데 목조 건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고 ? 세번쩨로 오래된 수덕사이다.
덕숭산에 앉은 수덕사는 왠지 평온한 느낌이었다.
이젠 게을러 카메라는 차에 스마폰으로
소나무를 그리려고 담아 왔다 ,나의 모델인 셈이다.
박물관에 들러 두 선사의 영정을
만공스님 가사도 /일화 하나 소개 하면은
아직도 업고 있느냐?"
경허선사와 만공스님 이 두분의 선문답에 가까운 대화들도 많이 알려져 남아 있는데
제일 재밌는 것은 옛날 교과서에서 소개된 아직도 업고 있느냐라는 이야기.
어느날 두 스님이 얕은 하천을 건너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미인 하나가 물을 못 건너고 그 개울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고
경허선사가 등을 내밀며 업히라 하고
스님으로서 이런 행동을 하는 만공스님이 아무리 스승이지만 못마땅했나 보다,
그래서 개울을 건넌 후 줄곧 못마땅한 얼굴을 하자 경허선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고
만공스님은 작정한 듯이 불제자로서 방금 그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화를 내니
경허선사가 대답하시었다.
"나는 그 여인을 개울 건너편에 내려 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선문답이란 게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 그런 말씀이라 인상에 남았는데 그저 두 스님이라고
소개된 내용이 사실 경허선사와 만공스님의 수많은 일화 중에 하나라고 한다.
수덕여관에는
한국 최초 여성화가 나혜석과 현대 동양화 화백으로 유명한 이응로 화백에 관한 일화가 남아 있다.
우리의 영혼은 예술이다 .
고뇌하지 말게나 ...
가는 가을이 아쉬웠나 ? 내가 붙잡아 세워 두었다.
경허큰스님
빈거울로 세상을 맑게 되비추는 그냥 잘 닦여진 거울이기를 원했고 ,
나중에는 거울이면서도
거울이 아닌 그런 경지에 올랐던 스님.
나중에는 환속하시어 훈장이 되신 무애행 !!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돌아 오는길은 6시간
비오고 ,졸립고, 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