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오리가족
늑대와 오리가족
늑대와 오리가족
늑대가 까치발로 선 채 감나무에 온몸을 딱 붙이고 있습니다.
대가리만 살짝 돌려 음흉함이 가득한 눈초리로 오리 일가족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늑대는 대단히 풍족한 땟거리를 만났습니다. 오리 가족을 살펴보면, 아빠 오리가 맨 앞에서 뒤돌아보며
‘어딜 가든 항상 조심’을 외치고, 엄마 오리는 알았다고 날갯짓을 합니다.
졸졸 쫓아가는 새끼 오리는 세상 험한 줄 모르고 마냥 즐겁습니다.
남의 집 담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여러 가지 ‘망상’을 했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의 늑대는 앞날을 내다보고
그 어렵다는 까치발과 숨을 참는 고통을 이겨내며 어떤 순간을 쟁취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오리 가족의 나들이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그려놓은 벽화 앞에서 잡념이 깊어져 꽤나 앉아 있었습니다.
뒤에 들은 바로는 늑대와 오리 가족은 아직도 그러고 있답니다.
...............................................................................................................................................................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
.
.
▶“삶의 대부분은 밋밋하고 지겨운 일상이다.
우리를 온통 적시는 소나기는 평생에 몇 번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반짝이고 사라지는 것을 좇아 일생을 사는 일은 그리하여 삶의 대부분을 배반하는 위험한 짓은 아닐는지.
기나긴 기다림의 순간에는 의심스러운 의지만으로 견디고 그리워하며 외로웠지만
그보다 늘 맘이 아린 건, 내 삶의 허망한 터전을 깨우치는 충일의 순간이다.”
-유성용의 책 『여행 생활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