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
"무릇 머무르는 바 없이 그 진실한 마음을 일으키라"/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
서라벌 요석공주와의 끈질긴 애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원효는 마침내 명주실보다 질기디 질긴 애증의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구도의 길을 떠납니다.
어느 날 원효는 한 마을에 들어갔는데 마을 전체가 괴이합니다. 개소리, 닭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그 중 어느 집 마당에 들어가서 인기척을 내어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습니다.
기이한 느낌을 받은 원효가 그 집 안채에 들어가니 온통 송장 썩는 냄새로 진동하였습니다. 염병이 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효는 그 집을 나와 집집마다 들어가서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하였습니다.
원효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뜨거운 물로 씻기고 밥을 해서 먹였습니다. 죽은 사람들과 그 물건들은 모두 모아 태웠습니다.
이러기를 열흘쯤 하니 염병도 물러가고 마을 사람 중 반 수 가량이 원효의 살신성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일단 염병이 돌면 속수무책으로 마을 모두가 전멸하던 당시에 이처럼 마을 사람 반수 이상이나 목숨을 건진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생불(生佛)이 나셨다고 감사해 하였고 그 마을에 절을 짓고 평생 모실 테니 있어만 달라고 원효에게 조릅니다.
그러나 원효는 나는 가야 할 사람이라고 그 마을을 떠납니다. 마을 사람 모두의 눈물어린 환송을 받고 원효는 길을 떠납니다.
원효가 마을 사람들이 안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 설 때 문득 “아, 참 보람된 일을 하였구나,
몽땅 죽을 목숨들인데 그래도 나를 만나 모두 살아났구나, 그 사람들을 돌보아 주기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뿌듯한 만족감을 가지고 산굽이를 넘을 때 어디선가 문득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 원효야, 너는 아직도 멀었다. 그러니 항상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만들어 내는
사바세계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이 아니냐? 이놈아, 네가 목말라 물을 마시고 나서 아, 참 잘했구나, 할 것이냐?
네가 똥이 마려워서 똥을 누고 나서 아, 보람된 일을 하였구나, 하겠느냐?” 하는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는 마을 사람들을 구한 것은 물마시고 똥 누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보람 있는 일을 했다느니, 내가 그래도 큰일을 했다느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은 아직 도가 덜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원효는 여기서 큰 깨우침을 얻습니다. 이것을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고 합니다.
“무릇 머무르는 바 없이 그 진실한 마음을 일으키라는 뜻입니다.”
즉 내가 무엇인가 봉사를 할 때 공치사하려는 의도를 가지려 한다든지,
처음에는 아무런 사심 없이 봉사하였으나 나중에라도 혹 “내가 그래도 이만큼 했는데...
”하는 공치사에 마음이 머무른다면 그 봉사는 참 봉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하신 성모님의 응답처럼 우리의 봉사가 참 봉사가 되려면 우리의 마음 또한 겸손의
덕을 갖춰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에도 많은 형제들이 밥을 먹으러 옵니다. 어떤 분은 형제들에게 접시를 이리 놓아라,
저렇게 해라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불평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본다면,
낯선 사람으로부터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맘부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런 맘을 미리 알아주고 하느님이 주신 양식을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요구조건이나 사심 없이 하는 봉사가 이루어진다면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함께 삶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러합니다.
" 태양이 비출때 밝은 부분이 있듯이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있습니다. 밝은 부분은 누구라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부분도 포용할 때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이라는 말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