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에서 ~~!!]/시가 있는 아침
연잎에 고이는 빗방울처럼
애-플
2010. 9. 27. 22:19
연잎에 고이는 빗방울처럼 - 이홍섭(1965∼ )
연잎에 고이는 빗방울처럼
나 그대에게 스밀 수 없네
경포호수를 다 돌아도
닿을 수 없는 그대 사랑, 빗방울 소리
빗방울 굵어지고
연잎은 하염없이 깊어가네
나 방해정(放海亭) 마루에 홀로 서서
불어나는 호수를 바라보고만 섰네
스밀 수 없는 그대 사랑
내 가슴을 열어
출렁이는 호수를 다 쏟아내어도
닿을 수 없는 그대 사랑, 빗방울 소리
나 이제 야위어 호수에 잠기네
나 이제 야위어 연잎에 잠기네
연잎은 빗방울을 또르르륵 굴러 내리게 한다. 아무리 스미고 싶어도 스미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쏟아놓는 수많은 언어들도 실은 스미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우리는 가장 정확한 말을 했노라고.
그런데 인간의 언어 중에서 그래도 스며들 수 있는 언어는 시어(詩語)뿐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닿을 수 없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임을 알면서도,
또는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닿으려는 몸부림을 하게 하는 언어. 그런 의미에서 시어는 존재의 몸부림이다.
이 아침 ‘출렁이는 가슴의 호수를’ 쏟아내 보라, 언어로.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