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속에서 ~~!!]/시가 있는 아침

난(蘭) - 박목월(1916 ~ 78)

애-플 2010. 4. 2. 10:54

난(蘭) - 박목월(1916 ~ 78)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허락받은 것을 제대로 지키면서 사는 것은 넘치는 욕심이 아니라 천분을 나누는 일이다.

누릴 수 있는 것조차 다 누리지 못한다면 누구나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시인은 주어지는 것조차 덜어내겠다고 말한다.

 섭섭하고 애석한 포기로 더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난(蘭)은 생존의 조건이 가팔라졌을 때, 향기롭고 품격 있는 꽃을 피운다고 하던가.

그러므로 분수를 지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버릴 줄 아는 삶을 살라는 이 권면은 타인에게 돌리는 충고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