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2010. 2. 9. 13:37

 

 윗세오름에서 내려오는 길, 뒤돌아본 세상은 예전에 보았던 한라산이 아니었다.

                                                                                 (위) 윗세오름 근방, 켜켜이 쌓인 눈 물결.

 

올겨울엔 제주도를 걷지 않으면 애석할 것 같다. 풍부한 적설량 때문에 걷고 싶었던 길이 더 예뻐졌다.

그래서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데도 올레길엔 배낭을 멘 올레꾼이 줄지 않고, 한라산 산행객은 오히려 늘었다는 소식이다.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입산 인원이 지난해에 비해 30~40%나 늘었다고 밝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관광객이 많아 렌터카 업체들이 울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12월, 서귀포에서 진입하는 돈내코 길이 15년 만에 개방되면서 한라산 등산로는 동서남북에서 가능해졌다.

 돈내코 길은 예전 제주목사들이 백록담을 구경하고 하산 길로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글만 읽던 문관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이다. 또한 사철 난대림이 왕성해 아이들이 신기해할 것 같은 식생이 많다.

한라산에 인적이 잦아진 이유는 눈 덕택이다. 올겨울 한라산은 예년보다 일찍 눈이불을 덮었다.

1월 중순께 등산로에 쌓인 눈이 1m를 훌쩍 넘겼다. 한때 겨울비가 내려 잠시 꺼지는 듯싶더니, 지난주 신설이 내려 다시금 폭신해졌다.

산행을 안내하는 나무계단은 말뚝만 보이고 눈에 묻혀 버렸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쳐 놓은 오렌지색 뺄랫줄만이 등산로임을 표시하고 있다.

눈보라를 경험한 한라산의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폭설에 혹한까지 겹쳐 백록담 화구벽은 히말라야 고산거벽처럼 얼어붙었다.

시커먼 위용을 자랑하던 백록담 남서벽은 백설기처럼 포근해졌고, 윗세오름 근방 구상나무 군락은 ‘스노몬스터’ 지대로 변신했다.

푸른 가지에 눈이 켜켜이 쌓이고 바람이 깎아 내면서 저마다 조각상이 됐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국적 광경에 객들은 그저 입을 벌리고 바라볼 뿐이다.

히말라야 같다.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는 산사나이들은 눈 쌓인 한라산을 반긴다.

 백록담 아래 장구목 일대는 올봄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하는 원정대의 훈련 캠프가 차려졌다.

 한반도 남쪽에서 허리까지 차는 눈은 이제 한라산 정상 일대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다.

산사나이들은 눈 속에 집을 짓고, 러셀(많은 눈을 지치며 길을 내는 것)을 하고, 빙벽을 기어오르며 오래간만에 찾아온 폭설을 만끽하고 있다.